(聖住寺址五層石塔) 보물 | 석탑 | 1기 | 1963.01.21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3 | 통일신라시대 | 국유 | 보령시
성주사는『삼국사기』에 나오는 백제 법왕 때 창건한 오합사(烏合寺)가 이 절이었다고 하며¸ 통일신라 문성왕대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이 이 절의 주지가 되어 번창시키니 왕이 ‘성주사'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한다.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현재는 절터만 남아 있다.
이 절의 금당터로 보이는 곳의 앞에 서 있으며¸ 뒤로 3층 석탑 3기가 나란히 서 있는데¸ 서로 층수만 다를 뿐 만든 솜씨는 비슷하다. 탑은 2단의 기단(基壇) 위에 5층의 탑신(塔身)을 올린 모습이다. 기단은 각 면마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두었으며¸ 기단의 위로는 탑신을 괴기 위한 편평한 돌을 따로 끼워 두었다.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¸ 각 면의 귀퉁이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.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으며¸ 추녀밑은 수평을 이루다가 위로 살짝 치켜 올라갔다.
전체적으로는 통일신라시대 탑의 전형적인 모습이나¸ 1층 몸돌 아래에 괴임돌을 따로 끼워둔 것은 고려석탑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형식이며¸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. 각 층의 구성이 짜임새가 있으며 우아한 모습이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