(唐劉仁願紀功碑) 보물 | 석비 | 1기 | 1963.01.21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 16-1 국립부여박물관 | 신라시대 | 국유 | 국립부여박물관
당나라 장수 유인원(劉仁願)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(碑)이다. 부소산에 세 조각으로 깨진 채 흩어져 있던 것을¸ 그 자리에 비각을 세워 복원해두었다가 해방 후 국립부여박물관으로 옮겨 놓았다. 비는 비몸돌의 앞면이 조금 깨어져 나갔고¸ 머릿돌도 부분적으로 깨어져 있으며¸ 비문은 몸돌 앞·뒷면에 새겨져 있으나 심하게 닳아 있어서 알아보기가 힘들다.
비몸돌과 머릿돌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는데¸ 머리부분은 각이 없이 둥글다. 특히 머릿돌은 여섯 마리의 용조각이 매우 사실적인데¸ 좌우 양 쪽에서 세 마리씩의 용이 올라가 서로의 몸을 휘감고 중앙에 있는 여의주를 서로 다투고 있다. 이는 당나라 전기의 화려한 수법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.
비문은 유인원의 가문과 생애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¸ 그의 생애에 대한 부분은 주로 그가 당나라 태종에 의해 발탁된 이후의 활동상을 적고 있다. 그는 645년 당 태종이 고구려를 공격할 때 뛰어난 공을 세웠으며¸ 660년에 소정방과 더불어 백제를 공격하여 멸망시킨 뒤 백제유민들의 부흥운동도 평정하였다. 그 이후의 행적은 비문이 지워져 더 이상 알 수 없다.『대동금석서(大東金石書)』에서는 이 비문을 유인원이 썼다고 하고 있으나¸ 이 설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.
비가 세워진 시기는 통일신라 문무왕 3년(663)으로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(국보 제9호)에 비문을 새긴지 3년 후이다. 비록 당나라 장수의 공적비이기는 하지만 비문 중에 의자왕과 태자 및 신하 700여 명이 당나라로 압송되었던 사실과 부흥운동의 중요내용¸ 폐허가 된 도성의 모습 등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상황을 아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