용어,문화재 홈 > 문화재 상세정보
리스트로 글자크게 글자작게 프린트

강화산성

(江華山城)
사적 | 성지(성곽) | | 1964.06.10
인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산3번지 일원 | 고려시대 | 국유¸사유 | 강화군

강화읍을 에워싸고 있는 고려시대의 산성이다. 몽골의 침입으로 백성과 국토가 수난을 당하자¸ 당시 실권자인 최우는 1232년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다. 왕궁과 성¸ 그리고 관아 시설은 1234년에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었는데¸ 이 때 개경의 궁궐과 비슷하게 지어 산의 이름도 송악이라 지었다. 흙으로 쌓은 성은 내성·중성·외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¸ 내성은 주위 약 1¸200m로 지금의 강화성이다. 중성은 내성을 지키기 위해 쌓았으며¸ 외성은 1233년 강화 동쪽 해안을 따라 쌓았다. 이 외성은 몽골군이 바다를 건너 공격하지 못하게 한 가장 중요한 방어시설이자¸ 정부가 39년간 육지로부터 물자를 지원받았던 곳이기도 하다. 고려 원종 11년(1270)에 개경으로 수도를 다시 옮기면서 몽골과 강화조약의 조건으로 성을 모두 헐게 되어¸ 조선 전기에 내성이었던 강화성을 축소하여 다시 지었다. 1637년 병자호란 때 청군에 의해 다시 파괴당하였고¸ 숙종 3년(1677)에 성을 보수하면서 모두 돌로 쌓고 넓혀 지었다. 남문인 안파루¸ 북문인 진송루¸ 서문인 첨화루와 동문인 망한루가 남아있으며¸ 비밀 통로인 암문 4개와 수문이 2개 남아 있다. 높은 곳에서 망을 보기 위한 장대와 성 위에서 몸을 감추기 위한 여장 등의 방어시설도 갖추고 있었으나 여장은 모두 무너졌다. 현재 성의 동쪽 부분은 없어졌으나¸ 남북쪽 산자락은 잘 보존되어 있다. 조선 후기 병인양요·신미양요와 일본 침략에 의한 강화조약을 체결한 수많은 외세 침략의 역사적인 현장이다.


회원 로그인
아이디/비번 기억
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서 로그인하시면 별도의 로그인 절차없이 회원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.
많이 본 글
댓글 많은 글
추천글