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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

(寶林寺普照禪師彰聖塔)
보물 | 부도 | 1기 | 1963.01.21
전남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산10-2 보림사 | 통일신라시대 | 보림사 | 보림사

보림사에 세워져 있는 사리탑으로¸ 보조선사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. 보조선사(804∼880)는 어려서 출가하여 불경을 공부하였으며¸ 흥덕왕 2년(827)에 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을 받았다. 희강왕 2년(837) 중국으로 건너갔으나 문성왕 2년(840)에 귀국하여 많은 승려들에게 선(禪)을 가르쳤다. 헌안왕 3년(859)에 왕의 청으로 보림사의 주지가 되었으며¸ 77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. 왕은 그의 시호를 ‘보조선사'라 하고¸ 탑 이름을 ‘창성'이라 내리었다. 탑은 바닥돌부터 지붕돌까지 모두 8각으로¸ 통일신라 부도의 일반적인 모습이다. 탑신(塔身)을 받치는 기단(基壇)의 아래받침돌에는 구름무늬를 매우 입체적으로 조각하였고¸ 가운데받침돌은 아래위로 띠를 두른 약간 배가 부른 모습이다. 8개의 큰 연꽃조각 위에 놓여진 탑신의 몸돌은 앞·뒷면에 문짝 모양을¸ 그 양 옆에는 사천왕상(四天王像)을 새겼다. 두터워 보이는 지붕돌은 밑면에 서까래를 표현해 놓았고¸ 윗면에는 기왓골이 깊게 파여져 있다.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완전한 모양은 아니지만 복발(覆鉢: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)¸ 보륜(寶輪:바퀴모양의 장식)¸ 보주(寶珠: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) 등이 차례로 놓여 있다. 탑신의 몸돌이 지붕돌에 비해 지나치게 커 보이고¸ 지붕돌의 질감이 달라서 전체적으로 부자연스럽다. 일제시대 때 사리구를 도둑맞아 쓰러졌던 것을 복원한 바 있는데 이때 일부분이 손상되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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