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창경궁

(昌慶宮)
사적 | 궁지 | | 1963.01.18
서울 종로구 와룡동 2-1 | 조선 세종 | 국유 | 문화재청

조선시대 궁궐로 태종이 거처하던 수강궁터에 지어진 건물이다. 성종 14년(1483)에 정희왕후¸ 소혜왕후¸ 안순왕후를 위해 창경궁을 지었다. 처음 지을 당시의 건물은 명정전·문정전의 정전과 수령전·환경전·경춘전·인양전·통명전들의 침전이 있었으며¸ 양화당·여휘당·사성각 등이 있었다. 조선시대의 궁궐 중에서는 유일하게 동쪽을 향해 지어졌다. 처음에는 별로 사용되지 않다가 임진왜란 때에 경복궁·창덕궁과 함께 불에 탄 이후¸ 창덕궁과 같이 다시 지어져 조선왕조 역사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. 숙종의 사랑을 받던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독살하려는 못된 행동을 저지르다가 처형을 당했는데¸ 당시 희빈은 주로 취선당에서 생활하였다. 또한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일을 저질렀는데¸ 세자가 갇힌 뒤주를 궁궐 안의 선인문 안뜰에 8일간이나 두었었다. 창경궁은 순종이 즉위한 후부터 많은 변화가 있었다. 1909년 궁궐 안의 건물들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으며¸ 궁의 이름을 창경원으로 낮추기도 하였다. 그러다가 1984년 궁궐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원래의 이름인 창경궁을 되찾게 되었고¸ 궐 안의 동물들을 서울 대공원으로 옮기면서 벚나무 역시 없애버렸다. 장조·정조·순조·헌종을 비롯한 많은 왕들이 태어난 궁으로¸ 광해군 때 다시 지은 정문·정전 등이 보존되어 있으며¸ 옆에 있는 창덕궁과 함께 조선시대 궁궐의 역사를 살피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유적이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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